콩물에 국수를 왜 말아먹지? 어린 시절, 분식집이나 중국집에 가서 콩국수를 먹는 부모님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나. 한입 먹어보라는 말에 살짝 입에 데어보고는 퉤퉤 뱉어내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한다고 했나. 몇 년 전 친구 따라 맛본 콩국수 이후, 콩국수 맛에 빠져 서울 대표 콩국수 맛집에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가면서 먹기에 이르렀으니.
빠르게 상하는 콩물 특성상 여름 한정으로만 맛볼 수 있는 콩국수. 콩을 갈면 다 똑같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얀 콩물, 까만 콩물에 우유나 땅콩을 넣은 콩물까지. 게다가 설탕을 넣냐 소금을 넣냐는 작은 논란까지. 각양각색 맛집별 특징이 분명한 서울 대표 콩국수 맛집 세 군데를 소개한다.
여의도 진주집
직장인들의 숨은 맛집으로 통하는 여의도 백화점 지하상가. 그곳에서 땅따먹기 하듯이 조금씩 사세를 넓히는 집이 있다. 유튜브 풍자의 또간집에 나왔던 맛집 진주집. 주말에는 가게를 삥 둘러 건물 지하 입구까지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진주집은 냉콩국수와 손칼국수, 비빔국수와 접시만두 단 4가지 메뉴만 파는 곳이다. 콩국수가 낯선 일행이 있다면 닭칼국수나 비빔국수를 시켜 같이 먹기에도 좋은 곳.
국물은 점도가 높은 꾸덕한 스타일이며, 면은 중국집 스타일의 중면이 제공된다. 간이 적당히 되어 있어서 소금이나 설탕은 기호에 맞게 넣어서 먹으면 되는 곳으로, 콩국수를 처음 맛볼 곳으로 추천하는 클래식한 맛집이다. 김치는 보쌈김치 스타일로 칼국수와 콩국수 모두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 두 번 리필해 먹었다. 기본 콩국수로 반 정도 먹고 반은 설탕을 한 스푼 넣어 먹는 걸 추천. 한 가지 메뉴에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가격: 15,000원 / 다른 메뉴: 손칼국수, 비빔국수, 접시만두 / 면스타일: 중면 / 김치: 잘 익은 보쌈김치
시청 진주회관
시청역 삼성본관 뒤편, 1층짜리 건물에 위치한 진주회관에서는 조박사 냉콩국수를 맛볼 수 있다. 삼성의 故이건희 회장의 생전 단골집으로 유명한 이곳은 1962년에 오픈해 서울 백 년 가게로도 선정된 오래된 맛집이다. 역시 인기 맛집이나, 회전율이 매우 빨라서 대기 시간이 길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집. 특이하게 삼겹살 등의 고기구이 메뉴를 같이 팔며 섞어찌개와 김치찌개도 맛볼 수 있다. 다만 특정 기간에는 콩국수만 판매하기 때문에 다른 메뉴가 궁금하다면 사전에 확인 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국물은 강원도 황태콩을 이용해서인지 다른 곳에 비해 더욱 꾸덕하고 고소한 맛이 강한 편이다. 면은 속이 투명한 느낌의 중면으로 약간 쫄면 느낌이 나서 꼬들한 느낌이 드는 면을 사용한다. 김치는 약간 익은 겉절이 스타일로 배추도 큼직해서 먹을 맛이 나는 편. 혹시나 먹는 양이 많은 편이라면 면 곱빼기를 따로 시켜 남은 콩국에 말아먹을 수 있으니, 다른 곳에 비해 혜자가 아닐까 싶다. 역시나 반 정도 먹고 설탕 넣어 먹기를 추천.
가격: 16,000원 / 다른 메뉴: 김치찌개, 섞어찌개, 삼겹살 등 / 면스타일: 꼬들한 쫄면 스타일 중면 / 김치: 약간 익은 겉절이
선릉 맛자랑
대치동에 있던 곳이 선릉역과 선정릉역 사이로 이사를 왔다. 때문에 35년 전통이지만 가장 신식의 깔끔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서 먹어야 하지만, 지역 특성상 식사시간을 피하거나 저녁시간에 간다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콩국수는 먹고 싶지만 웨이팅은 싫다면 맛자랑에서 먹기를 추천한다. 칼국수, 굴국밥, 비빔밥, 보쌈 등 메뉴도 가장 다양해 여러 명이 방문해 이것저것 나눠 먹기에도 좋은 곳이다.
서리태를 사용해서인지 국물이 가장 하얗고 맑다. 그리고 꾸덕한 느낌이 가장 적다. 그리고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오이와 토마토가 고명으로 올라간다는 점. 때문에 사진 찍기에 가장 예쁜 콩국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주 독특하게 메밀면이 있는데, 메밀면과 콩국물의 만남은 흔하지 않아 개성도 강한 편. 김치는 방금 담은 듯한 겉절이로 제공하는데, 다른 콩국수 집에 비해서는 김치의 개성이 가장 없는 편이다. 클래식한 콩국수라기보다는, 콩국수의 이단아 느낌. 정통 콩국수가 두려운 입문자가 즐기기에 좋을 것 같다.
가격: 14,000원 / 다른 메뉴: 보쌈, 칼국수, 굴국밥, 비빔밥 등 / 면스타일: 메밀면 / 김치: 갓 담근 듯한 겉절이
면을 취급하는 중국집, 막국수집, 분식집 등 많은 곳에서 콩국수를 팔고 있지만, 콩국수 전문점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 15,000원 정도 하는 가격은 비싼 거 아닌가 싶지만 글을 쓰며 확인해 보니 매년 1,000원씩 계속 인상되어 몇 년 뒤면 20,000원 하는 콩국수를 보게 될 것 같으니, 맛보고 싶다면 이번 여름에 한 번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혹시 지금 대표님, 팀장님 때문에 열불 나 있는 직원이 있다면, 반차내고 콩국수 먹으러 달려가시라!
Comments